그대여 날 남기고
그대여 날 남기고
그때 내가 쥐고 있던 칼이
만약 내 팔이 아닌
손목에 제대로
깊숙하게 들어왔다면
나 지금 여기 없었겠지
아마도
병원 아니면 사후세계
혹은 그냥 관 속
내 사진 앞에서 울고 있을
가족들의 모습
상상이 안돼
내 죽음으로 달라질 것들
나라는 사람을 잃은
슬픔에 한동안은
눈물로 밤을 새겠지만
나로 인해 통장은
넉넉해질 가족들
뭐 그거면 됐어
빌어먹을 돈 때문에
고생 많이 해서
딱 몇천만원만 있음
좋겠다고 꿈꾸던 게
현실이 된다면
그래 그걸로 난 됐어
대신 그걸로 제발
싸우지 말아줬음 해
할머니 장례식
그때는 정말 못 볼 꼴 봤지
그렇게 떠나긴 싫어
난 그냥 조용히
가고 싶네
미련보단 후련하게 덤덤히
그대여 날 남기고
그대여 날 남기고
과연 몇이나 될까
날 위해 울어줄 사람
내 관 앞에서 내 얘길
안주삼아 술 먹을 사람
검은 옷을 입고
흰국화 꽃을 내려 놓으며
우리 엄마께 인사를 드리면서
지긋이 눈을 감고
잠시 나를 추억해 줄 사람
내일 출근이라도
기꺼이 밤을 새 줄 사람
아마 몇명은 있겠지
고마운 사람들
죽어서도 잊지 않을거야
내가 받은 사랑을
만약에 그 곳에서
신이라는 존재가
나에게 넌 살면서
무엇을 남긴 것 같냐고
질문한다면
당장은 대답 못하겠지만
급할 필욘 없겠지
엄청 많을거야 시간은
그리고 아마 내가
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
모두들 돌아가야겠지
각자의 삶으로
모든 죽음이 그렇듯이
잠깐의 슬픔 뒤 잊혀지고
그때 사람은 죽지
하지만 난 서운해
하지 않을게
그건 당연한거니까
괜히 찾아가지 않을게
다만 조금
어색하긴 할 것 같아
서로 너무 다른 모습으로
마주칠 너와 나
그때 과연 우린 무슨
대화를 나눌까
그때도 우리 사이가
지금과 같을까
아마도 난 그대로
일 것 같은데
시간이 흐르면 너에게도
내 존재가 흐릿해질까
진짜 그럴까
- 연주중 -
그대여 날 남기고
그대여 날 남기고